안녕하세요~lylona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일본의 전통복인 기모노와 우키요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기모노와 우키요에가 무엇일까요?
기모노는 일본의 전통 의복이고 우키요에는 목판화에 그 시대의 풍속을 담은 그림이에요
한국으로 치면 민화와 비슷한 개념이죠
기모노는 실을 풀 수 있게 직선으로 재단 되어 있어 세탁할 때는 이걸 다 분해해서 손 세탁한 다음 다시 꿰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실 이 얘기가 흥미로워서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보고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 기모노의 구조 및 양식 변화
에도시대(1603~1868)는 사무라이 중심의 봉건 사회 였어요 신분제가 있었기 때문에 옷차림으로 신분을 구분했습니다.
에도시대의 기모노- 상인계층 여성(오이란, 게이샤)는 화려한 색감이나 문양이 들어간 매우 장식적인 기모노를 입었어요
기모노는 겹쳐 있는 방식으로 여성은 긴 소매인 후리소데를 자주 입었고
남성은 무채색과 단순한 문양이 들어간 기모노를 많이 입었죠
기모노는 계절마다 문양이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부채나 물결,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대나무나 매화의 문양이 들어간 기모노를 입었다고 해요
계절에 안 맞는 기모노를 입으면 촌스럽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 문물이 잔뜩 유입이 되게 되면서 점차 양복을 착용하게 되었어요
에도시대에는 겹겹이 입는 스타일이 유행했다면 메이지 시대에는 실용적이고 단순화된 스타일이 유행했어요
이때 기모노와 양장이 혼합된 스타일이 등장하게 돼요
기모노에 모자를 입거나 장갑을 끼고 부츠, 코르셋을 착용하게 되죠
상류층 여성들은 서양식 드레스를 착용하게 되면서
기모노는 우리나라의 한복과 같이 일상복에서 예복.의례복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기모노 입는 방식은 왼쪽 옷깃이 위로 오도록 입어요
오른쪽이 위로 가는 경우는 망자에게 입히는 방식이라 살아있는 사람이 그렇게 입게 되면 실례라고 합니다.
우키요에에 나타난 복식 묘사의 시대적 차이
우키요에란? 에도 시대부터 유행한 목판화 형식의 대중그림 입니다. 현재의 연예인 포스터, 잡지와 같은 역활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나무판에 그림을 새기고 여러색을 덧씌워 인쇄를 했는데 수백 수천 장도 제작이 가능했던 복제 가능한 예술작품이에요
에도 시대(1603~1868) 우키요에는 주로 미인화,가부키 배우, 유곽(오이란),무사, 민속 이야기 등을 주제로 많이 그려졌어요
에도시대의 대표 작가로는
-가쓰기카 호쿠사이
대표작으로는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 중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백귀야행 그림 두루마리》이 있어요
주로 후지산과 파도를 잘 표현했어요
-우타가와 히로시게
대표작으로는 《도카이도 53차(東海道五十三次)》,《명소에도백경(名所江戸百景)》등이 있으며 일본의 사계절, 비 오는 거리, 눈 내리는 다리 같은 정서적인 풍경 표현이 탁월 했다고 하죠
-기타가와 우타마로
대표작으로는 《미인화 시리즈(美人画)》,《십이시간 풍속 미인도》가 있으며 미인화의 대가에요
우타마로는 당대 최고의 미인화가 였지만 막부의 검열로 인해 잠깐 투옥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우키요에는
주로 열차나 증기선,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우키요에가 점차 뉴스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그림으로 바뀐 특징이 있습니다.
이때의 화풍은 점점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뀌었어요
사진술과 석판 인쇄의 보급이 되면서 목판화는 시대에 뒤처지게 되었죠
복식 변화를 통해 본 일본 사회의 근대화 흐름
복식은 단순한 외양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화적 코드입니다. 에도시대의 복식은 봉건적 신분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복장을 통해 신분을 나타내야 했고, 법적으로도 계층에 맞는 복식 외에는 착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는 복식이 사회적 통제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메이지시대에 들어서면서 복식은 점차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전에는 가정과 사회 내에서 정형화된 역할이 강조되었으나, 메이지 중기 이후 교육을 받은 여성과 직업여성이 등장하면서 복식에도 실용성과 활동성이 강조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학생복, 양복을 입은 직장 여성 등은 당시 일본 사회의 여성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한 정부 주도의 근대화 정책은 서양식 복장을 문명화의 상징으로 적극 장려했고, 이는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복식의 변화이기도 했습니다. 궁중 행사에서 양장을 착용한 황실 인물들, 해외 사절단의 정장 차림 등은 일본이 세계 무대에 ‘근대 국가’로 등장하려는 시도를 복식으로 표현한 사례입니다. 결국 에도에서 메이지로의 복식 변화는 단순한 의복의 진화가 아니라, 봉건적 질서에서 근대 시민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발생한 사회적 변혁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통과 서구, 규범과 개인성의 경계에서 복식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조율되었습니다.
에도시대의 기모노는 전통 질서와 미학을 반영한 복식이었고, 메이지시대의 복장은 변화하는 사회와 근대화의 산물이었습니다. 두 시대의 복식은 형태, 기능, 의미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일본 사회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했습니다. 복식사를 통해 시대의 정신을 읽고자 한다면, 에도와 메이지의 패션 비교는 가장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